전 세계는 지금 화폐의 미래를 둘러싼 격변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특히 중국은 모바일 결제의 전면적 확산과 디지털 위안화 도입 추진을 통해 '현금 없는 사회'로의 급속한 전환을 주도하며 글로벌 금융 패러다임의 변화를 촉진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가상화폐 열풍, 비트코인 채굴 산업의 현실, 그리고 베네수엘라의 디지털 화폐 도입 시도와 맞물려 각국 중앙은행의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 연구 경쟁을 심화시키고 있다. 화폐의 본질과 통화 주권을 둘러싼 국가 간의 치열한 신경전은 이미 시작되었다.
1. 중국, 모바일 결제 중심의 '현금 없는 사회' 선도
중국은 이미 모바일 인터넷 결제가 일상생활의 깊숙한 부분까지 침투하며 현금 사용량을 급격히 감소시키고 있다. 도시를 넘어 텃밭에서 직접 기른 채소를 판매하는 농부조차 모바일 결제를 선호하는 현상은 중국 사회의 디지털 전환 속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현재 중국 전체 인구의 약 71.4%가 모바일 결제를 이용하고 있으며, 이는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의 모바일 결제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이로 인해 상인과 손님 모두 거스름돈을 준비하지 않아 당황하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할 정도로 현금의 존재감은 미미해지고 있다.
2. 뜨거운 가상화폐 열기와 그 이면의 그림자
모바일 결제의 확산과 더불어 중국 내에서는 가상화폐 투자 열풍이 거세다. 가상화폐를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한 젊은 세대들이 등장하고 있으며, 가상화폐 투자 분석 회사를 운영하며 91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인플루언서까지 나타났다. 그러나 가상화폐는 극심한 변동성을 특징으로 하는 자산이다. 하루에도 엄청난 수익과 손실을 오갈 수 있으며, 중앙은행이나 국가의 통제를 받지 않아 불법 자금 세탁의 온상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된다. 중국 정부는 부정부패 자금의 해외 유출을 막기 위해 가상화폐 인출을 금지하는 강도 높은 규제를 시행했지만, 가상화폐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인기는 여전히 식지 않고 있다.
3. 비트코인 채굴의 거대한 현장: 내몽골의 숨겨진 공장
가상화폐 열풍의 한 축에는 비트코인 채굴 산업이 자리 잡고 있다. 중국 내몽골 지역에는 1만여 대의 채굴기가 24시간 쉬지 않고 가동되는 대규모 비트코인 채굴 공장이 존재한다. 이들은 복잡한 수학 문제를 풀어 비트코인을 획득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문제 해결 난이도는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진다. 비트코인의 총 발행량은 2,100만 개로 제한되어 있으며, 오는 2040년이면 모든 채굴이 종료될 것으로 예상된다. 막대한 전력 소비와 환경 문제 등 비트코인 채굴이 야기하는 부작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4. 베네수엘라의 디지털 화폐 실험: '페트로'의 한계와 도전
한편, 극심한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자국 화폐 가치가 휴지 조각이 된 베네수엘라는 새로운 시도를 감행했다. 석유를 기반으로 한 디지털 화폐 '페트로'를 발행하여 연금 대신 지급하는 등 국가 주도의 디지털 화폐 도입을 추진했다. 그러나 페트로는 사용 가능한 곳이 제한적이고 결제 속도가 매우 느린 등 기술적인 문제와 사용자 신뢰 확보라는 큰 과제를 안고 있다. 베네수엘라의 사례는 디지털 화폐가 단순히 발행된다고 해서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없음을 시사하며, 기술적 완성도와 더불어 사용자 편의성, 그리고 정부에 대한 신뢰가 필수적임을 보여준다.
5. 디지털 위안화와 기축통화 경쟁의 서막
중국의 '현금 없는 사회' 전환은 단순히 편리함을 넘어선 국가 전략적 의미를 내포한다. 중국은 디지털 위안화(DCEP) 상용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며 현금 발행을 줄이고 디지털 거래를 확대하려 한다. 이는 돈의 흐름을 국가가 직접 통제할 수 있는 강력한 기반을 마련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나아가 중국의 디지털 위안화는 달러와 경쟁하는 세계 기축통화로 발돋움하려는 야심을 품고 있다. 중국의 이러한 움직임은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들의 CBDC 개발 필요성을 자극하고 있으며, 이미 미국 역시 CBDC 검토에 착수했다. 한국 중앙은행 역시 급변하는 글로벌 환경에 대응하고 국가 간 기축통화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CBDC 연구 및 기술 전담 조직을 신설하는 등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디지털 화폐의 보안성과 신뢰성 확보는 이제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핵심 과제가 되었다. 우리는 예상보다 빠르게 다가오는 화폐 패러다임의 변화 속에서 어떤 준비를 해야 할 것인가? 새로운 시대에 대한 깊은 고민과 전략적 대응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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